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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방

바보 노무현

 

 

 

 

한국을 떠날 즈음 겨우 주말이 되서야 유치원 다니던 아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나마 집이랑 비교적 가까운 곳에 에버렌드에가 있어서 알뜰한 아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가방을 메고 졸린 눈과 피곤한 다리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놀이동산에서 총총거리는 아들 녀석을 꽁무니만 줄기차게 따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땐 매번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는 했다.

'다음 주에는 아무것도 않하고 소파에 누워서 야구나 보면서 낮잠 한 번 늘어지게 자야지'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었다. 평일이 되면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나 전철 창밖으로 남들이 사는 아파트 평수, 그들이 타는 번쩍이는 시커먼 자동차와 비현실적인 연봉에 대해서 한 숨쉬고 부러워 하는 그런 출퇴근 길이 었다.

 

'노빠'는 아니었지만 술자리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비록 그의 편을 들어 줄 상황이 아니더라도 편을 들어 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냥 나 같이 담배 피우는 대통령이 좋았나 싶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깜깜하던 퇴는길, 전철역 임시 분향소 영정사진 앞에서 그만 멈추지 않는 눈물이 터져나와 버렸다. 누가 볼까 부끄러워 참배하는 척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는 수 없이 바뀌는 참배객의 발들만 처다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목놓아 커이커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죽음과 우리 정치판이 주는 서글픔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 너무도 분명했다.

 

월급쟁이 30대 가장이 가진 고민, 차가운 현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와 정치판이 내던진 배신감 등과 점철되어 내면 속에서 억눌려 왔던 불안하고 슬픈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바보 노무현... 어쩌면 나를 이곳 지구 끝에 살게 한 많은 이유들 중에 정말 작은 이유가 되었던건 아닌가 하고 다시 생각도 해본다. 사실은 그때 풀지 못한 30대의 수 많은 숙제들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이지만 말이다.

 

 

돌아 가신 5월 23일, 오늘.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