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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살아 가는 이야기

집 뒷마당에서 캠핑하기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에서는 겨울중에서도 유난히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고 야단법석이다. 

 

반대로 여기 지구 끝에서는 집 뒷마당 구석 구석까지 여름이 성큼 다가와 초록을 더해가고 있다. 사실 추워도 눈 내리는 겨울, 하얀 발자국과 두툼하고 멋스런 목도리가 그립기는 하다.

 

     

 

 

여름방학과 휴가에 맞춰 몇 주전부터 오늘 무리와이 비치로 가려 했던 캠핑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캠핑은 꼭 캠핑장이어야 하는 법은 없으니 뒷마당 한구석에 텐트를 펴기로 했다. 그리고 얄짤 없이 밤에는 무조건 텐트 안에서 자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달랑 3 식구지만 분명히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려면 편히 자야 한다'라고 할 께 뻔한 아내를 제외하기로 남자들 끼리 아침에 미리 합의했다.

 

 

 

따끔 따끔한 햇살 아래서 텐트를 올리고 불피울 준비를 끝내고, 늦은 점심을 컵라면으로 해결하니  캠핑온 것 같은 기분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아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동네 시끄럽게 연기를 피운다. 조개탄이 타들어가면서 매운연기가 이곳저곳 퍼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이웃집 창문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오늘은 귀막고 이웃들이 이해주리라 믿고 한 시간이 넘도록 연기를 피워댔다. 

 

불도 이제 참 잘 익었다.

 

     

 

 

마실 기회가 없어서 몇 달을 묵혀둔 소주... 예전에는 좋아하지도 않았던 소주이지만 가만히 벌겋게 달아 오를 내 얼굴이 미리 생각나 미소가 지난다. 삶이 단순해지니 생각도 단순해지나 보다.

 

 

 

 

그 소주 친구로 인터넷 뒤져서 땀 뻘뻘나도록 멥게 양념한 비장의 닭똥집 주물럭...

 

 

 

아빠가 불 피고 양념하는 동안 이 녀석은 시원한 콜라와 한국 과자까지 두고 게임 삼매경이다.

 

 

 

고대사거리 닭발집에서 매운 닭발, 김으로 양념한 주먹밥과 소주가 막 생각난다. 항상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술고래도.... 뭘하고 살고 있을까 ?

 

 

 

제 집처럼 우리집에 다니는 옆집 고양이 '수리'가 어수선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지 마실와서는 이것 저것 열심히 살펴보고 또 노려본다.

 

 

 

뉴질랜드 육해공 삼합, 쇠고기, 닭고기(?), 초록홍합...

 

 

 

 

아들은 양념이 되지 않은 조개냄새에 극도로 예민해 하지만 캠핑장이니 만큼 코를 빨래집게라도 찝고 먹어보려 시도해본다. 결과는 역시 아까운 조개만 버렸다 .

 

 

 

캠핑장의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밤늦게 출출할 때 먹는 '라면'... 아직 해가 훤해서 야식이라 하기는 이르지만 오클랜드에 해가 지자면 9시가 넘어야 하니 미리 야식이라 해둔다.

 

 

 

 

저녁 먹고 배부르고 '알딸딸'하기까지 하니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샤워하고 편하게 다리뻗고 자고 싶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약속이니 만큼 집에 들어가지니 핑계 꺼리가 없다. 

 

근데 뜻밖에 비가 온다.

 

"아들아, 비오면 꿉꿉해서 침낭에서 자기가 쉽지 않거든, 어쩔수 없이 오늘은 집에서 자야 겠다"

아들은 못내 아쉬워 하지만, 아빠란 사람은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다는 안도감과 취기에 피곤이 확 밀려온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난 후에 다시 텐트안으로 끌려와서 결국에는 아들과 밤을 보내게 되었다.